title: Desire author: Maybe date: 2026-03-21 category: anxiety description: 내가 원한다고 생각한 것이 정말 내 것이었는가. 16년간의 스마트폰 변천사와 AI 구독을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으로 해체한다. tags: desire, identity, consumption url: https://persona.love/anxiety/desire --- 나의 첫 스마트폰은 Desire HD였다. 2010년 11월, KT 독점 출시. HTC라는 대만 회사가 만든 폰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리 흔한 폰이 아니었다. 그 해 사람들은 갤럭시 S나 아이폰 4를 샀다. HTC는 전작까지 합쳐도 국내 판매 5만 대가 안 되는 비주류였고, 4.3인치 화면은 "너무 크다"는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배터리 1,230mAh. 동시기 폰 중 최하위. 왜 이걸 골랐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왠지 마음에 들었다. 커뮤니티에서는 이 폰을 "잉후"라 불렀고, DHD를 한글 타자로 쳐서 "옹"이라고도 했다. 돌이켜보면 폰 이름이 Desire였다. 원하다. 그때 나는 이걸 진짜로 원했을까. Desire HD를 고른 건 UI 때문이었다. HTC Sense. 당시 안드로이드 기본 인터페이스는 투박했는데, Sense는 달랐다. 날씨 위젯이 화면에 흐르는 방식, 연락처를 넘기는 감촉, 화면 전환의 부드러움. 스펙이 아니라 손끝의 느낌으로 고른 폰이었다. 두 번째 폰은 베가 R3. 2012년, 팬택. 지금은 사라진 회사다. SKY에서 VEGA로 리브랜딩한 직후 나온 첫 모델이었는데, 나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Vega. 직녀성. 스펙보다 VEGA라는 로고가 하단에 박힌 게 좋았다. 브랜드의 느낌을 산 것이다. 팬택은 결국 출혈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내 두 번째 폰의 제조사가 지구상에 없다. 세 번째부터는 디자인이 기준이었다. LG G3 Cat.6. 2014년. 세계 최초 QHD 디스플레이. 그다음은 LG G5. 2016년. 하단을 빼서 카메라 그립이나 오디오 모듈을 끼우는 실험을 했다. 혁신적이었고, 망했다. LG는 2021년에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누적 적자 5조 원. 내 세 번째, 네 번째 폰의 제조사도 사라졌다. 갤럭시 S9+가 2018년. 처음으로 삼성을 썼다. HTC가 없고, 팬택이 없고, LG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갈 곳이 삼성밖에 없었다. 그다음이 갤럭시 S21. 2021년. 그리고 iPhone 15 Pro Max. 2023년. 처음으로 아이폰을 썼다. 이때는 달랐다. 카메라나 디자인이 이유가 아니었다. 보안, 생태계 호환성, iOS의 안정감. 기기의 겉이 아니라 그 위에서 돌아가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매번 기준은 달랐다. Desire HD에서 S21까지는 전부 같은 질문 안에 있었다. "어떤 기기를 살까." 물건을 골랐고, 사면 채워졌고, 또 다른 물건을 원했다. iPhone으로 넘어간 순간이 달랐다. 물건을 고른 게 아니라, 기기 너머의 무언가를 향하고 있었다. 2026년 3월 현재, 그 iPhone 15 Pro Max는 약정이 끝난 채 내 손에 있다. 무겁다. 솔직히 이제 좀 가벼운 폰을 쓰고 싶다. 서브폰은 Galaxy S21. 출시된 지 5년이 넘었다. 배터리는 하루를 못 버틴다. 그래도 쓴다. 갤럭시 S26이 3월 11일에 나왔다. 출고가가 30만 원 가까이 올랐는데도 사전예약 135만 대. 나도 스펙을 훑어봤다. 눈에 들어온 건 카메라가 아니었다. 빅스비, 제미나이, 퍼플렉시티가 시스템 레벨에 동시 탑재됐다. 삼성이 내세우는 강점 자체가 하드웨어에서 AI로 넘어갔다. S26을 메인으로, iPhone 17 Air를 서브로. 머릿속에서 굴려봤다. S26에 끌린 건 프라이버시 디스플레이와 AI 기능이었다. 아이폰 생태계는 서브폰으로도 충분하고, 두 대 모두 지금 Pro Max보다 가볍다. 기기가 예뻐서가 아니었다. 그 위에 올라간 것들이 끌렸다. 그리고 포기했다. 돈이 없어서. 그게 전부다. 이 와중에 포기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GPT, Gemini, Perplexity는 기본 모델로 쓰고 있다. 무료이거나 기본 구독. Claude는 맥스 모델로 쓴다. 월 200달러. Suno로 음악을 만들고, Kling으로 영상을 만들고, Grok도 쓴다. 합산하면 월 40만 원이 넘는다. Claude Max만 한화 30만 원이다. 갤럭시 S26 + iPhone 17 Air를 합치면 대략 300만 원 이상인데, 내 AI 구독은 연 500만 원 가까이. 폰 두 대보다 비싸다. 만질 수 있는 것을 포기했다. 만질 수 없는 것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여기까지 적고 나서 한 가지가 불편해졌다. 나는 16년 동안 매번 비주류를 골랐다. 남들이 갤럭시와 아이폰을 살 때 HTC를 골랐고, 팬택을 골랐고, LG를 골랐다. 그게 나만의 선택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커뮤니티를 떠올려보면, 거기에는 나처럼 비주류를 고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마트폰 갤러리, XDA. 누군가가 HTC Sense의 위젯을 칭찬했고, 누군가가 VEGA 로고를 자랑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고 따라 원한 것이다. 나와 Desire HD 사이에는 커뮤니티의 누군가가 끼어 있었다. 르네 지라르는 이 구조에 이름을 붙였다. 인간은 대상을 직접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원함을 보고 따라한다. 나, 모델, 대상. 삼각형. 내 16년에 대입하면, 부인하기 어렵다. "잉후" 리뷰를 쓴 누군가, VEGA 로고를 자랑하던 누군가. 매번 모델이 있었다. 비주류를 고르는 것이 곧 자율적 선택이라는 보장은 없다. "남들과 다른 걸 고르는 사람"이라는 모델을 모방하는 것은, 주류를 모방하는 것과 구조가 같다. 비주류가 전부 사라지자 나도 삼성과 애플로 갔다. 모방할 소수가 없어지면 다수를 따라가게 된다. 근데, 정말 전부 모방이었을까. Desire HD의 Sense UI를 처음 만졌을 때의 느낌은 기억한다. 날씨 위젯이 흐르는 걸 봤을 때, 그건 누군가의 리뷰를 읽어서 느낀 게 아니었다. 내 손끝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LG G5의 하단 모듈을 처음 끼웠을 때도 그랬다. 찰칵 소리가 났고, 그게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삼각형이 아니라 선분이었다. 나와 기기, 둘뿐이었다. 모방의 구조 안에서도 모방이 아닌 순간이 있다. 진입은 모방이더라도, 그 안에서 경험하는 것은 내 것이다. 문제는 그 둘을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의 AI 구독도 마찬가지다. Claude Max를 $200에 쓰는 이유가 정말 "더 많이 쓸 수 있어서"일까. Reddit에서 "Pro로는 부족하다"는 글을 읽었고, X에서 "Claude Code + Max 조합이 최고"라는 포스팅을 봤다. 그 사람들의 원함을 따라한 것이다. 하지만 2010년 새 폰 박스를 뜯던 순간의 기분과, 2026년 새벽 프롬프트 결과물이 올라오는 순간의 기분이 사실 그렇게 다르지 않다. 모방이 입구였더라도, 그 안에서 느끼는 것까지 모방은 아니다. 그렇다면 Desire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시작을 건 쪽인가, 느끼는 쪽인가. 피터 틸은 모방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며 경쟁하면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경쟁은 패배자를 위한 것."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곳에서 시작하라고. 나는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알아차린다고 원하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끝까지 걸린다. 10대의 나는 UI에 반했고, 이름에 끌렸다. 전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이었다. 20대의 나는 디자인을 보고, 소거법으로 고르고, 실용을 따졌다. 30대의 나는 생태계를 보고, AI를 보고, 구독을 결제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시대가 바뀐 건지, 모방 대상이 바뀐 건지, 내가 바뀐 건지 분간할 수 없다. 전부 다라는 답은 아무 말도 아닌 것과 같다는 걸 안다. 다만 Desire라는 단어 안에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처음부터 들어 있었다. 16년 전에는 4.3인치 액정 위의 이름이었다. 지금은 매달 결제되는 목록이 됐다. 이름은 사라졌지만 원하는 마음은 사라진 적이 없다. 그걸 처음부터 내 것이었느냐고 물으면 자신이 없다. 기기 일곱 대와 구독 일곱 줄을 거치고 나서야, 그 질문을 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