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산만해지지 않는다는 것 author: Maybe date: 2026-03-25 category: anxiety description: 에이전트는 산만해지지 않는다. 맞다. 그런데 산만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뜻밖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tags: ai-agent, desire, consumption, serendipity url: https://persona.love/anxiety/wandering --- 나는 마트에 직접 간다. 쿠팡이 더 빠르다는 걸 안다. 새벽배송을 걸면 내일 아침이면 온다. 그래도 간다. 고기는 직접 본다. 진열된 것들 사이에서 색을 보고, 결을 보고, 내 맘에 드는 걸 고른다. 생선도 그렇다. 선도를 눈으로 확인하고, 크기를 비교하고, 이 개체가 좋겠다고 스스로 결정한다. 채소는 싱싱한 것을 만져보고 고르는 편이고, 향초는 뚜껑을 열어 맡아보기도 한다. 옷은 귀찮으면 그냥 사지만, 시간이 되면 입어본다. 급하고 귀찮으면 쿠팡에서 한다. 그런데 직접 가서 사는 게 더 좋다. 왜 좋은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좋다. 다이소에 가면 더 심하다. 필요한 건 하나인데 두세 바퀴를 돈다. 시장에 가면 사람 구경을 한다. 아무것도 안 사고 돌아올 때도 있다. 효율로 따지면 전부 실패한 동선이다. 에이전트였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검색하고, 최저가를 비교하고, 주문하고, 끝. 그 사이의 시간은 전부 낭비로 분류된다. --- a16z 크립토 블로그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Open Agentic Commerce and the end of ads." 제목부터 선언이다. 광고의 종말. 요지는 이렇다. 에이전트는 배너를 건너뛰고, 스폰서 링크를 무시하고, 목표만 추적한다. 결제 프로토콜이 에이전트에게 지갑을 쥐여주면, 광고주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광고가 오픈 웹을 만들었고, 그 웹이 학습 데이터가 되었고, 그 데이터가 LLM을 만들었고, LLM이 광고를 죽인다. 아이러니의 순환. 구조적으로 맞다. 동의한다. 그런데 한 문장 앞에서 오래 멈췄다. "에이전트는 산만해지지 않는다." 이 문장이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이 문장이 빠뜨린 것 때문에. --- 산만해진다는 것. 사러 간 것이 아닌 것에 눈이 가는 일이다. 계획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일. 고기를 사러 갔다가 옆 코너에서 제철 과일을 발견하는 일. 다이소에서 필요 없는 걸 장바구니에 넣는 일. 시장 골목을 걷다가 먹어본 적 없는 반찬을 사오는 일. 신경과학 연구가 있다. 사람들은 직접 고른 물건보다 우연히 발견한 물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찾지 않던 것을 발견하는 경험. 알고리즘이 취향을 정밀하게 맞춰줄수록 오히려 경험이 반복적으로 느껴진다는 소비자 조사도 나온다. 큐레이션의 정확도가 올라갈수록 세렌디피티가 사라진다. 에이전트는 산만해지지 않는다. 맞다. 그런데 산만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뜻밖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이 좋았다. 마트 통로를 돌 때, 시장 좌판 앞에서 멈출 때, 다이소 선반 사이를 지나갈 때. 그 순간들이. --- 커피를 예로 들면 쉽다. 에이전트는 가장 싼 원두를 가장 빠르게 주문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매장에 가서 메뉴판을 본다. 이번에는 다른 걸 시켜볼까 하다가 결국 늘 먹던 걸 시킨다. 앉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컵을 드는 손도 같은 손이다. 스타벅스가 커피를 "제3의 공간"으로 만든 건 카페인 전달의 효율화가 아니었다. 주문하는 언어, 앉는 자리, 컵을 드는 느낌. 그것은 의식이었다. 에이전트에게 위임하는 순간 의식은 사라진다. 쇼핑의 심리학에서 의식과 습관은 다르다고 한다. 습관은 무의식적이지만 의식은 의도적이다. 물건을 고르는 행위가 의식이 될 때, 만족감은 물건이 아니라 고르는 과정에서 온다. 쿠팡에서 장을 보는 건 습관이다. 마트에 직접 가서 고기를 고르고, 생선을 들여다보고, 채소를 만져보는 건 의식이다. 나는 그 의식이 좋아서 직접 가는 것이었다. --- 가방 하나를 사려고 한 달을 고민한 적이 있다. 비쌌다. 실용적이지도 않았다. 비슷한 가격에 더 좋은 기능의 가방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그게 좋았다. 왜 좋은지 설명하라고 하면 잘 못 한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욕망의 정의에 가까운 것 같다. 에이전트가 대신 골라주면 어떻게 될까. 최적의 가격, 최적의 기능, 최적의 리뷰 점수. 다 맞는 가방이 온다. 그런데 남들이 보는 것은 나의 안목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출력이 된다. 내 취향이 아니라 모델의 기본값. "내가 골랐다"는 느낌이 사라진다. McKinsey가 어딘가에서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다. 고관여 구매에서 소비자는 에이전트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의도적으로 통제를 유지한다고. 차, 여행, 패션, 보석. 사람들이 직접 고르는 이유는 에이전트가 못 해서가 아니다. 직접 고르는 것 자체가 가치이기 때문이다. 위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위임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 에이전트가 잘하는 것은 필요를 채우는 일이다. 가장 싼 단백질, 가장 빠른 경로, 가장 안정적인 서버. 최적화할 수 있는 것. 에이전트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욕망이다. 이 구분은 경제학이 오래전에 정리해둔 것이기도 하다. 필요는 생존을 위한 것. 욕망은 그 너머에 있는 것. 행동경제학의 Thaler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예측 가능하게 비합리적이다. 손실 회피, 매몰 비용, 프레이밍 효과. 우리는 최적화 알고리즘이 아니라 경험 법칙으로 산다. 욕망은 비합리적이다. 감정적이다. 정체성에 묶여 있다. 에이전트의 목적 함수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 가방이 왜 좋은지"를 파라미터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그래도 그 가방을 원한다. --- 에이전트에게 위임할 수 없는 구매가 나에게 몇 개나 있는지 세어봤다. 휴지, 세제, 생수. 이런 건 내일 당장 맡겨도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여행지, 다음에 읽을 책, 입고 나갈 옷, 선물할 향수. 이것들은 다르다. 고르는 시간이 경험이고, 고른 결과가 나를 말해주고, 그 과정을 누군가에게 건넨다는 건 나의 일부를 건네는 것이다. 광고의 시대가 끝난다는 선언 앞에서, 나는 하나만 생각한다. 끝나는 것은 해킹이다. 27년간 주의력을 착취하던 배너, 스폰서 링크, 알고리즘 추천. 에이전트가 그것들을 무시하는 순간 그 구조는 무너진다. 그런데 해킹 이전에 광고가 하던 일이 있었다. 사람의 욕망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 Apple이 "Think Different"로 한 것, Nike가 "Just Do It"으로 한 것. 그건 정보를 전달한 게 아니었다. 정체성을 제안한 것이었다. 에이전트가 효율을 전부 가져간 뒤에야, 효율이 아닌 것의 윤곽이 선명해질지도 모른다. --- 마트에 간 어느 저녁이 자꾸 떠오른다. 고기를 사러 갔다.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보다가 하나를 골랐다. 돌아오는 길에 과일 코너를 지나다가 자두가 눈에 들어왔다. 제철이 아닌 것 같은데 색이 좋았다. 하나 집어서 냄새를 맡았다. 장바구니에 넣었다. 에이전트였으면 그 자두는 내 식탁에 오지 않았다. 고기만 오고, 과일 코너는 지나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냄새를 맡는 일도, 색을 보고 마음이 가는 일도 없었다. 산만함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에이전트는 산만해지지 않는다. 나는 산만해진다. 마트에서, 시장에서, 다이소에서. 그리고 아마도, 그 산만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